알랭 드 보통의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고 쓴 글
태어나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덕분에 종교와 관련된 기억과 경험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부처님 오신 날에 가족들과 함께 마음 내키는 절의 경내를 걷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스님 말씀을 듣거나, 직계 조상들의 제사와 차례를 성실히 지냈던 어린 시절 함께 음식을 나르고 절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나눠먹었던 기분좋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반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아파트 단지 몇 호의 어느 아주머니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도시 괴담처럼 떠돌기도 했다. 갓 입학한 대학교 1학년 때는 새내기 새로배움터를 떠나기 직전, 학교 광장 잔디밭에서 역시 사이비로 추정되는 종교의 동아리 남녀에게 붙잡혀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버린 적도 있다. 몇 번의 짧은 문자만으로도 사이비임을 직감하고 연락을 끊었지만, 3월 내내 잊을 만하면 연락이 와서 짜증나고 귀찮았던 기억이 새삼 난다.
이래저래 종교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환경 속에서, 종교 속 여러 일화나 세계관의 구성요소들은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여겨왔다. 그리하여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내 태도는 늘 ‘꽤나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라 믿을 수 없다’와 ‘내 삶에 끼어들지 않는다면 관심없다’ 정도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알랭 드 보통의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었다. 책은 전반부에서 정확히 나 같은 사람의 시니컬함을 먼저 짚으며, 열린 태도로 인간이 만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서의 종교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주기를 요청한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향해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 중에서 가장 따분하고 비생산적인 것은 과연 그 종교가 ‘진실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이다.
진정한 이슈는 하느님이 존재하느냐 않느냐 여부가 아니라, 만약 하느님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이라면 이런 논의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혼나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간 종교의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면모를 내심 비웃어왔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인도에 따라 종교를 인간이 만든 발명품으로 정의하고, 이 발명품이 품은 여러 역할과 가능성을 언번들링해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졌다. 책을 읽다보면, 종교는 가족도 국가 제도도 손을 제대로 뻗지 못했던 인류 문명의 사각지대를 묵묵히 커버하며 성장해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랜 기간 인류가 다듬어온 종교들 덕분에 우리는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결혼과 장례를 비롯한 의식을, 영혼을 위로하고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삶을 더 깊이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을 배우고 익히고 베풀 수 있었다. 영적이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미술과 건축 역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책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던 어느 토요일 낮, 정동교회에서 열린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책을 읽으며 종교적인 공간과 예식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참이라, 나도 모르게 주변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